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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계가 쉬는 밤, 조선의 시간을 지킨 자격루 이야기

삶을 그리다 2025. 2. 24. 10:09

 

🌙 해시계가 없는 밤, 조선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알았을까?

해가 뜨고 지는 것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사람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보고 시간을 가늠했습니다. 낮에는 앙부일구(仰釜日晷) 같은 해시계를 이용해 현재 시각을 알 수 있었죠. 하지만 밤이 되면 해가 보이지 않으니 해시계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창경궁 자격루
창경궁 자격루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현재 소장)

 

그렇다면 조선 시대 사람들은 밤에 시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사실, 현대처럼 손목시계나 휴대폰이 없는 시대에 정확한 시간을 아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몇 시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관청, 군대의 교대 시간, 백성들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시간을 관리하는 일’은 왕이 직접 책임져야 할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 시대의 왕은 단순히 나라를 다스리는 것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하루의 흐름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했습니다. 일어나야 할 시각, 일해야 할 시간, 쉬어야 할 시간 등을 관리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의 안정성을 보장했던 것이죠.

 

하지만 해시계는 오직 낮에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밤에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있는 시계가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시대에는 물의 흐름을 이용한 ‘물시계(누각, 漏刻)’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조선의 첫 번째 물시계, 그러나...

사실 물시계의 역사는 조선보다도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고, 고려 시대에도 물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이 존재했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인 태조 7년(1398년)에도 왕실에서는 공식적인 시간을 알리기 위해 물시계를 사용했죠.

 

이 물시계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 물이 한 방울씩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물이 차오르는 눈금을 기준으로 시간을 확인했고, 시간이 될 때마다 사람이 직접 종이나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기존 물시계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밤새도록 교대하며 물을 지켜야 한다.
조금이라도 관리가 소홀하면 정확한 시간을 잴 수 없다.

 

즉, 사람이 직접 감시하며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물의 흐름을 감시해야 한다니... 조선의 시계 관리 담당자는 정말 피곤한 직업이었겠죠? 

 

이러한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세종대왕은 보다 정확하고, 자동으로 시간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물시계를 만들 것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맡게 된 사람이 바로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이었습니다!

자격루의 탄생과 혁신적인 기술

세종대왕과 장영실, 자격루를 만들다

세종대왕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과학을 사랑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그는 정확한 시간 측정을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농업, 군사, 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시간이 정확해야 나라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격루
출처 - 나무위치 국립고궁박물관 에서 실제 크기의 복원품을 볼 수 있었으나 2022년 과학문화실개편으로 철거되었다.

 

하지만 당시 사용하던 물시계는 사람이 직접 시간을 확인하고 종이나 북을 쳐야 했기에 너무나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이에 세종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를 만들어라!"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때 왕의 명을 받아 장영실, 김빈, 이천 등 조선 최고의 기술자들이 모여 자동 물시계 개발에 착수합니다.
그리고 2년간의 연구 끝에, 1434년(세종 16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자동 물시계 ‘자격루’가 탄생하게 됩니다.

자격루, 어떻게 시간을 알렸을까?

자격루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이 없어도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작동했을까요?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한 정교한 장치로, 위쪽에 있는 파수호(播水壺)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래쪽 수수호(受水壺)로 모이면서 시간을 측정하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중간에는 길이 3.5m, 너비 18cm, 깊이 12cm의 네모난 나무 구조물이 배치되어 물이 일정하게 흐르도록 유도되며, 왼쪽에는 12개의 구멍이 뚫린 동판(銅板)이 설치되어 작은 구리 구슬을 담을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25개의 구멍이 있는 동판이 배치되어 보다 큰 구리 구슬을 담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동판은 계절에 따라 적절하게 조정하여 사용된다.

 

물이 수수호에 모이면 떠 있던 ‘살대(浮箭)’가 점점 올라가면서 특정한 기계를 건드리게 되고, 이로 인해 작은 구리 구슬이 떨어져 구리 통으로 굴러 들어갑니다. 작은 구슬이 특정한 위치에 도달하면 기계가 작동하면서 큰 구슬이 떨어지게 되고, 큰 구슬이 아래쪽에 있는 짧은 통으로 굴러가면서 숟가락 모양의 장치를 움직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기계의 한쪽 끝이 자동으로 시간을 맡은 십이지신(十二支神)의 팔을 쳐서 종을 울리게 되며, 같은 원리로 경점(更點)에서는 종 대신 북이 울리고, 초점(初點)에서는 징이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자격루는 사람이 직접 시간을 측정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종과 북을 울려 정해진 시간마다 시각을 알릴 수 있는 혁신적인 장치로 기능하였습니다.

 

 

1) 물의 흐름을 이용한 정밀한 시간 측정

  • 자격루는 물이 천천히 흘러 일정한 시간 간격마다 자동으로 기계 장치를 작동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 기존의 물시계는 사람이 눈금을 확인해야 했지만, 자격루는 물이 차오르면 자동으로 시보(시각을 알리는 장치)가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2) 종과 북이 자동으로 울리는 시스템

  •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계 장치가 스스로 종이나 북을 울려 시간을 알렸습니다.
  • 예를 들어, 새벽 1시, 2시, 3시…가 되면 자격루 내부에서 자동으로 소리가 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 이는 현대 디지털 시계의 ‘알람 기능’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3) 여러 가지 시보 장치가 있었던 자격루

자격루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활용했습니다.


⏰ 1) 종(鐘) – 아침 시간
⏰ 2) 징(鉦) – 낮 시간
⏰ 3) 북(鼓) – 밤 시간
⏰ 4) 목인(木人) – 나무로 만든 자동 인형이 시각에 따라 움직임

즉, 낮에는 종이 울리고, 밤에는 북이 울리며, 정해진 시간이 되면 목인이 나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정교한 장치 덕분에 누군가 계속 지켜보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이죠.

조선의 밤을 지킨 자격루, 세계적인 과학 기술이었다!

자격루는 단순한 물시계가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앞선 자동화 기술이 적용된 시계였습니다.


당시 서양에서도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기계식 시계는 드물었고, 이 정도 수준의 자동 물시계를 만든 나라는 조선이 거의 유일했습니다.

💡 자격루가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

  • 농업 발전 →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어 농부들이 해 뜰 시간과 질 때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음
  • 군사 체계 강화 → 군대의 교대 시간과 훈련 시간을 정확히 통제할 수 있었음
  • 관청 업무 효율성 증가 → 관리들이 보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도움

즉, 자격루는 조선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과학 발전의 상징적인 유물이었습니다.

 

자격루가 조선 역사에 남긴 의미

세계적으로도 앞선 자동 시보 장치
자격루가 만들어진 15세기에는 서양에서도 기계식 자동 시계가 흔치 않았습니다.
조선은 이러한 시대에 기계식으로 작동하는 정밀한 물시계를 개발하여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나라였음을 증명했습니다.

 

과학 발전의 상징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한 기술 개발에 힘썼고, 장영실은 그 기대를 뛰어넘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발명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조선이 단순히 농업 국가가 아닌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 강국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창경궁 자격루

시간 개념의 대중화
자격루 덕분에 조선 사람들은 밤에도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생활의 질서가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조선 사회가 점점 시간을 기반으로 한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춘 국가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자격루를 볼 수 있을까?

조선 시대의 원래 자격루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국립고궁박물관과 경복궁에서 복원된 자격루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실제로 작동하는 자격루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어, 당시의 기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 경복궁에서도 과거 자격루가 설치되었던 장소를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 시대의 과학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격루가 주는 교훈 – 과학의 발전은 시대를 초월한다

비록 현대에는 손목시계, 스마트폰, 원자시계까지 등장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 더욱 정밀해졌지만,기본적으로 자격루가 추구한 ‘정확한 시간 관리’라는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습니다.

 

“조선의 밤을 밝혔던 과학, 오늘날에도 그 정신은 살아 있다.”


자격루는 단순한 시계를 넘어, 조선이 과학 기술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정체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기술 혁신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격루가 들려주는 종소리는 멈췄지만, 그 종소리가 남긴 ‘과학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정신은 영원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몇 초 단위까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고,이를 위해 세종과 장영실이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자격루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그 시대의 과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다음에 박물관에 가게 된다면, 조선의 과학이 담긴 자격루를 한 번 직접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