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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극단화 현상과 대한민국 사회: 토론은 왜 극단을 낳는가?

삶을 그리다 2025. 2. 7. 13:57

대한민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 노동자와 자본가, 그리고 여당과 야당을 비롯한 여러 갈등 구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 다양한 ‘공론장’이 발달하면서 서로 다른 견해가 더욱 쉽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토론’을 하면 상대방의 의견을 더 잘 이해하게 되어 갈등이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토론이 심화될수록 의견이 오히려 더 극단으로 치우치고, 상호 비난이 격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집단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대표적 개념이 바로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입니다.

집단극단화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토론할 경우, 기존 입장이 더욱 강해지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게 되는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의미하는데, 지금부터 집단 극단화의 개념과 원인, 국내외 사례, 그리고 대한민국 특유의 배경과 극단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생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

집단 극단화란 세르주 모스코비치(Serge Moscovici)와 마리사 자빌로니(Marisa Zavalloni)가 제시한 이론으로, ‘유사한 의견을 지닌 개인들이 모여 토론할 때, 결과적으로 그 의견이 한층 더 극단적으로 변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토론

예컨대 미국 대외정책에 우호적인 사람과 비판적인 사람들이 각각 모여 토론을 진행했을 때, 토론 후에는 우호적인 사람들은 더욱 우호적으로, 비판적인 사람들은 더욱 비판적인 태도로 변했다는 실험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토론의 합리성이나 객관적 증거가 아니라, 참여자들이 ‘동질적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인식이 의견을 강하게 고착시키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이러한 집단 극단화에 대해 좀더 살펴보면 

사회심리학적 으로 첫째, 인간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지니고 있어서 기존 신념과 부합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강하고, 둘째,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에 따르면, 본인의 신념과 상충하는 정보를 접했을 때 생기는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더욱 확고히 하기도 합니다.


또한 집단 토론 과정에서는 ‘정보적 영향’‘규범적 영향’이 동시에 작용합니다.

정보적 영향은 “상대 주장에 타당한 근거가 있다”는 인식에서 생기며, 규범적 영향은 “집단 내 다수 의견에 동조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비롯됩니다.

확증편향

이 두 가지 영향이 결합될 때 집단 극단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집단 극단화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단 극단화는 개인 혼자 내린 결정보다 집단이 내린 결정이 더 위험하거나 과격해진다는 ‘리스키 시프트(Risky Shift)’ 현상과도 관련이 깊은데, 이러한 현상은 토론 후에 의견이 중간 지대로 수렴하지 않고, 오히려 어느 한쪽 끝으로 더 치우치는 현상으로 자주 관찰되곤 합니다.

다시말해, 집단 내부에서 형성된 결속감과 동조 압력이 개인이 가지던 온건함을 상쇄시키고, 밖으로 향하는 반대 집단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하게 맞서려는 태도를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간 대립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시기 미국은 정치적으로 극단화가 가속화 되었고,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건은 양극화된 정치 세력이 어떻게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입습니다.

또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과정에서도 잔류파와 탈퇴파가 극단적으로 갈라져서, 국민투표와 그 이후의 절차에서 사회적 분열이 장기화되기도 했습니다. 

인지부조화

대한민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2016~2017년) 당시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극명한 대립 구도를 이룬 바 있고, 최근 윤석렬 대통령의 계엄 및 탄핵 정국에서도 보수·진보 진영 간 극렬 대치를 볼 수 있습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대선 등을 거치면서도 지지자들 간 상호 불신과 비방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정치적 양극화가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온라인상의 젠더 갈등 역시 집단 극단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혐오 또는 여성 혐오 담론이 과격한 표현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이를 소비하는 이용자들은 더욱 감정적으로 결집해 반대 진영을 적대시합니다.

 

또한, 오랜 시간 대한민국 정치 지형을 설명해 온 지역주의도 집단 극단화 기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호남 등 특정 지역이 특정 정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은 선거 때마다 재현되고 있으며, 그 결과 서로를 이해·타협하기보다 고정된 진영에 갇혀 갈등을 반복하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노조와 경영진 간의 갈등에서도 강경 노조, ‘노조 파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맞서면서 서로의 입장을 더욱 극단적으로 강화하기도 합니다. 특히  노조 간부와 경영진 모두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서로의 입장이 극단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어, 파업과 교섭 과정에서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집단 극단화는 왜 나타나게 되었을까?

몇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심리적 원인을 들 수 있습니다. 

서로 비슷한 의견을 가진 집단 내에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은 개인의 의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반대 집단에 대해서는 과도한 감정적 반응이 나타나며, 결과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려는 시도보다는 ‘적대’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짙어지게 되죠,

 

이러한 심리적 원인을 가져오는 것들에는 미디어·온라인 플랫폼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SNS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등은 이용자가 선호할 만한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고, 이로 인해 유사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끼리만 연결되는 ‘에코 챔버’ 현상이 일어나며, 서로의 입장을 확인·강화함으로써 기존 신념이 더욱 공고해집니다.

 

그리고, 특정 이슈에 대한 가짜뉴스(Fake News)나 편향된 정보가 유통될 때,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확산시키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조사에 따르면, 많은 SNS 이용자들이 “정치·사회 정보를 접할 때 왜곡이나 과장이 심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같은 입장을 지지하는 정보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납니다.

또한 ‘필터 버블(Filter Bubble)’ 알고리즘은 사용자들이 선호할 만한 콘텐츠만 연속해서 보여 주어 편향을 더욱 강화합니다.

 

정치적으로도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중심제라는 승자독식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극단적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에 힘을 실어줍니다. 정당과 언론 역시 진영별로 확실하게 나뉘는 보도를 하는 경우가 많아, 유권자들이 서로 다른 정보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유지·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왜 이렇게 극단적일까?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 보면, 군사정권 시절 반공·지역주의 프레임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민주화 이후에도 지역 구도와 이념 대립이 크게 완화되지 못한 채 양당 체제가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국민은 주요 정치 이슈마다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받으면서, 정치적 대립이 자연스럽게 생활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도 있습니다. 

 

경제·사회적 맥락에서도 최근 청년 취업난, 부동산 문제, 불평등 심화 등으로 인해 개인들의 불안감이 커졌고, 이러한 불안감이 젠더·계층·세대 갈등과 결합하면서, 특정 집단 간의 적대적 태도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즉, 서로 다른 원인을 가진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갈등을 촉발하고, 이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집단 극단화’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문화·커뮤니티 방면에서도,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와 ‘우리 vs. 남’이라는 구분법은 공동체 내 결속을 강하게 만들지만, 반면 이질적인 집단에 대해서는 선입견과 배타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격앙된 표현들은 이 문화를 기반으로 더욱 거칠어지며,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 주장을 더욱 극단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는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무엇보다 개인 스스로 비판적 사고와 사실 확인을 생활화해야 하고, 정보의 출처나 통계의 신뢰도를 확인하며, 자신과 다른 견해에도 열린 태도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도적으로 반대 성향의 언론 또는 커뮤니티를 살펴보며,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습관도 도움이 됩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공론장을 확대하고, 다양성 확보해야햡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와 SNS 알고리즘은 다양한 견해가 균형적으로 노출될 수 있도록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숙의 민주주의 모델 도입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 과 같이 공론화위원회 등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충분한 토론과 정보를 공유받은 뒤 결정을 내리는 제도를 확산해 보아야 합니다. 

남녀 갈등

 

그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처럼 소수 의견을 국회에 좀 더 폭넓게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을 마련한다면, 극단 양당 구도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언론 보도 개선을통해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를 지양하고, 팩트체크 코너를 확대하면서 시민들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 교육을 강화하여 초·중·고등교육과정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와 민주적 토론 문화를 학습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장기적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집단 극단화 현상은 개인 수준에서부터 집단, 나아가 국가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심리·사회적 메커니즘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경우, 역사적으로 축적된 이념·지역 갈등, 승자독식 선거 제도, 최근의 경제·사회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극단화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토론의 기회가 늘어나면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자극적인 표현과 적대감이 넘치는 현장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불가피한 운명은 아닙니다.

정보 왜곡을 경계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개인적 태도, 그리고 공론장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사회적·정치적 노력 등이 결합된다면, 우리는 극단적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와 ‘존중’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차이를 인정하는 성숙한 토론 문화를 정착시킨다면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 Moscovici, S. & Zavalloni, M. (1969). The group as a polarizer of attitud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2), 125–135.
  • Stoner, J. A. F. (1961). A comparison of individual and group decisions involving risk (Doctoral dissertation,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 Sunstein, C. R. (1999). The law of group polarization. University of Chicago Law School, John M. Olin Law & Economics Working Paper, (91).
  • 기타 관련 언론 보도 및 학술자료.